외손녀가 중학생이 되었다.
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애기인데 말이다.
내가 중학생이 되었을때가 생각난다.
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된 나는 고모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.
고모집은 학교에서 철길을 건너 제법 걸어가야 했다.
동네 친구들은 한데 모여 학교 근처에 방 한칸을 얻어 자취를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부러웠다.
아버지는 자취를 하면 안 된다고 아버지 동생에게 나를 맡긴 것이다.
그때 고모는 딸만 셋이었고 나는 그 동생들과 한방을 사용했다.
고모는 집안일과 심부름을 모두 나에게 시켰다.
토요일에는 먼길을 친구들과 함께 걸어 집에 가서 자고 일요일에 다시 읍내로 오곤 했는데
그 일주일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.
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면 너무 너무 슬퍼졌다.
방바닥을 물걸레로 닦을때면 방바닥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뚝 뚝 떨어졌다.
고모 몰래 그렇게 울었다.
집에 가고 싶어서....
그 이듬해 고모는 또 딸을 낳았고 나는 고모집에서 쫓겨(?)났다.
그 이유는 딸 넷, 고모,나 모두 여자이니 고모부에게 미안해서 라고 했다.
나는 고모부가 화를 내신걸 본 적이 없다.
그때는 무조건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.
그 뒤로 고모는 아들을 낳아 1남 4녀의 어머니가 되었다.
그렇게 나는 또 다른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.
어린 나이였음에도 k장녀답게 부모님이 속상해 하실만한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.
부모님은 그저 내가 불만없이 잘 지내는 걸로 아셨다고 했다.
고모는 나중에 엄마에게 그때 내게 너무 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.
엄마는 왜 말하지 않았냐고 했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.
아버지 동기간중 그 고모만이 생존해 계신다.
지금 학생들은 참 좋겠다.
학교가 가까우니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질 일 없고 질 좋은 교복,좋은 가방,좋은 학용품으로 공부 할수 있으니까.
생각해보니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.
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한다.
"그래,잘 견디었어.칭찬해 줄게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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